생각해보면 그럴 것이다.
나 자신은 쓰레기를 버릴 때에 몇 개는 그냥 한 번에 잡아서 넣는다. 재활용도 미숙할 뿐더러, 환경에 대한 관심도 그저 평범한 일반인에 지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럼에도 녹색 숲이 우거진 곳을 좋아한다.
그렇지만 오늘로서 그 감상은 바꿔질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어차피 공부하는 대학생이지만 실험 준비로 호랑나비 애벌레를 준비하게 되었다. 호랑나비가 좋아하는 곳은 꽃이 있는 곳이지만, 산란을 위해서는 탱자나무나 산초나무 등지로 찾아와 알을 낳는다. 그럴 때, 어릴 때 보던 그 춤이 떠오른다. 그러나 탱자나무를 찾아도, 설령 찾는다 해도 그곳에서는 나비는 커녕, 애벌레 한 마리도, 심지어 그렇게나 볼 수 있었던 호랑나비의 춤도 보지 못했다. 오로지 그곳에 있는 것은 날카로운 가시로 중무장한 썩어가는 탱자를 달고 있는 탱자나무와 먹이를 기다리며 굶주리고 있던 겁쟁이 무당거미들 뿐이었다.
왜 이럴까?
결국 실험준비를 못하고 실험 하루를 날리게 되었다. 하지만 다음 실험을 대비해 또 다른 준비가 부과되고, 이제는 어떤 나비 애벌레도 상관없다고 했다. 그렇게해서 이번에도 호랑나비 애벌레를 찾으며, 동시에 배추흰나비의 애벌레를 찾는 것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 아무 것도.............
있는 것이란 그냥 잎사귀만 갉아먹은 흔적이 남은 배추잎. 그런데도 그 크기는 너무나 작다. 갉아먹었다기 보다는 먹다가 그냥 놔둔 것 같은 모습. 억센 배추잎을 뒤지면서 생각해본다. 녹색이 아무리 많아도, 꽃이 아무리 크고 아름다워도. 실제로..........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실제로는 이미 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겉은 멀쩡하고, 속은 사라지고 썩어가는 형상일지도 모르겠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면서도, 한편은 왠지 그게 맞는 것 같다. 보통 이 시기에 겨울잠 준비를 위해서 먹이를 잡아먹는 개구리 한 마리조차 울음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보통은 논밭에서 흘러나오는 개구리 울음소리는 시끄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추억이었다.
강에서는 피라미 대신 녹색 구정물만 흘러나오고 있다. 보이는 것은 과연 진실일까? 생각해보면서 난 다시금 숲을 쳐다본다. 거기에 있는 것은 거미줄과 몇몇 살아남은 식물들이 무리를 지어 자라날 뿐. 결국 그것이었다. 요새 들어 나비 한 마리 보기가 힘들어진다. 옛날에도 매연이니 환경오염이니 하지만, 지금처럼 그렇게 적은 것도 아니고 늘상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탱자나무에서 참새때가 숨은 것도 재미있고, 심지어 호랑나비 애벌레 키운다싶어 가시에 찔리기도 했다.
이제는 그러한 것들은 다 옛날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환경이니, 뭘 하니 해도..........
결국 그 시절은 돌아갈 수 없는 추억에 지나지 않는 것.
.............
갑자기 슬퍼진다.